강론말씀신부님의 강론말씀 코너입니다.
  • 2014.07.03
    7332014.07.03

    기억하라, 선포하라, 나누어라 -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송용민 신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 번쯤은 진지하게 물어본 사람은 자신을 살게 하는 근원적인 힘에 대한 물음을 피할 수 없다. 당장 살기 위해서는 먹을 것, 입을 것, 머물 곳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물질적인 풍요나 만족이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아님은 분명하다. 아무리 물질적 풍요가 많은 것을 보장해준다고 해도 인간이 겪는 궁극적인 영혼의 목마름이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 그것은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고, 인정 받고 싶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살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영혼의 갈증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왔기에 그분을 벗어나서 참된 행복이 없음을 강조한다.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당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주신 하느님의 창조 행위로부터 인간은 비록 세상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육신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생명의 숨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인간이기에 인간은 본성상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 살 수 없다.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이 하느님이 인간을 향한 사랑의 신비임을 분명히 안다면 그 사랑이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전달되어 왔으며 지금 여기서 생생한 현실이 될 수 있는 지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특히 가톨릭 신자는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통하여 확실하게 드러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향해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주시는 온전한 사랑이 성체 성사의 신비를 통하여 교회에서 지속되고 있음도 고백한다.

     

    성사(聖事)란 본래 하느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사건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거룩함은 인간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가시적 표징들을 통해서 전달된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를 인간은 언제나 가시적 현실 속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시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놀라운 사랑의 신비가 제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성체성사의 신앙과 삶을 강조하는 가톨릭 교회의 정신을 올바로 깨닫는 의미이기도 하다.

     

    1. 성체성사는 먼저 기억하는 성사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가장 큰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은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그 사건의 의미에 동참하고, 그 사건에서 나타나는 표징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해온 민족적 축제인 파스카 축제를 여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광야에서의 40년을 보내면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시간들을 기억하기 위한 파스카 축제는 이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찬 자리에서 그들이 익숙하게 먹고 마시던 빵과 포도주를 전혀 다른 의미로 바꾸신다. 그것은 곧 당신이 골고타 언덕에서 흘리고 찢겨질 피와 살을 표징해주는 살아있는 실재로서의 빵과 포도주였다. "이는 나의 몸이다. 이는 나의 피다. 너희는 받아 먹고 마셔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빵이 더 이상 먹기 위한 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거룩한 몸이 된다. 포도주는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당신이 흘리시는 피가 되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속죄의 피가 된다.

       이 놀라운 신비는 그야말로 믿음의 신비이다. 제자들은 비록 그 순간에 예수님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강림 이후 비로소 그 만찬이 예수님의 생생한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놀라운 신비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늘 그 만찬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같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그리스도의 생생한 현존을 고백하고 체험했던 것이다.

     

    2. 성체성사는 선포하는 성사이다. 선포한다는 것은 이 놀라운 신비는 신앙의 신비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인류의 죄와 죽음을 대신한 구원의 성사임을 세상에 선포하고, 자신들이 스스로 그 신앙을 살아가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만찬에서 세워진 새로운 계약의 의미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 이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은 두려워 닫았던 다락방의 문을 박차고 나와 놀라운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선포는 믿는 이들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었다. 성체성사의 놀라운 신비는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신비임을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고백한다. 사제가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들어올린 이후 외치는 말은 바로 "신앙의 신비여"이다. 신앙 만이 이 신비를 깨닫게 해주는 길이란 뜻이다. 모든 신자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히 신적 존재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 인류를 위해 내어주시고, 흘리신 살과 피의 의미를 선포하라는 것이다.

     

    3. 성체성사는 나누는 성사이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의 생생한 현존을 약속하셨다. 믿음 안에서 성체를 받아모신 우리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확신을 갖고, 사도 바오로 말씀대로 내 몸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 이제 미사가 끝나고 파견되면 우리는 각자의 가정과 사회, 직장으로 돌아가 그들에게 몸과 피를 내어준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먹히는 빵과 포도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나누어지는 내 삶이 되기도 한다. 현대인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재산의 일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눌 수도 있다. 어렵고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공감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더 구체적으로 나를 나누는 삶으로 생명운동본부에서 하는 헌혈이나 장기기증과 같은 직접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점은 성체성사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나눔의 삶을 통해서만 우리가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어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엄마가 갑자기 쓰러져 긴급히 수혈이 필요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 엄마와 가장 잘 맞는 피를 어린 아이에게서 찾았고, 그 아이에게 엄마에게 피를 나눠줄 수 있느냐는 말에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는 용기를 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기특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 그런데 제가 엄마에게 피를 나눠주면 저는 죽는거죠?" 아이는 어리지만 자기가 죽어서라도 엄마를 살릴 수 있다면 죽을 수 있다는 용감한 결단을 한 셈이다.

     

    성체성사는 이렇게 기억하고, 선포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된 은총의 삶이다. 표징으로 가득찬 세상 속에서 그 표징의 참된 가치를 찾아서 읽어내고, 해석해주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사람들에게 별 의미없이 주어진 삶의 표징들을 하느님의 사랑의 표징으로 읽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시대가 이기적인 욕망과 지배의 탐욕으로 가득찰 수록 그리스도인은 더욱 세상의 악의 표징들에 맞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징들을 선포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날마다 성체를 모시는 특권을 받은 신앙인으로서 가톨릭 신자라면 성체의 참된 맛을 들이고, 그분의 현존 앞에서 자주 이야기하며,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하느님을 향한 참된 기쁨을 미사와 성체성사 안에서 찾을 수 있길 소망해 본다.

     

     

    2014. 6. 22.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의 갈등이 해소와 치유는 같은 빵을 나눠먹는

    하나됨의 체험이 주어질 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날이 평화롭게 오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