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말씀신부님의 강론말씀 코너입니다.
  • 2014.05.30
    8152014.05.30

    생명을 살려라 - 부활 제3주일 강론

     

     

    송용민 신부

     

     

    나는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죽지 못해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진정 살아 있음이 축복이고, 생명에 대한 깊은 찬미가 내 인생에 언제 있어봤을까? 살고 죽는 문제가 과연 내 인생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을 받고 첫 번째 설교를 할 때 이렇게 외친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사도 2, 28) 생명의 길이 어떤 것인지 베드로는 확실히 체험하였다. 그것은 모든 것을 걸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며 그가 기대했던 많은 것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으로 모두 사라졌음을 체험한 이후에 겪게 된 놀라운 변화였다. 세속적인 삶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생명의 길이 어떤 길인지 분명히 보여주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굳이 그 길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예수님은 스스로 생명의 길을 걷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그분은 기적과 위대한 업적을 하신 이후에 늘 산속에 들어가시어 기도하셨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묻고, 그 뜻 안에서 살기 위한 예수님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시고, 유대인들이 희망하는 메시아임을 제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고백할 때마다 예수님은 분명히 밝히신다. 사람의 아들은 유대인들 손에 붙잡혀 매질 당하고, 모욕당한 이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이란 수난 예고도 하신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을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주실 것이란 확신 속에서 예수님은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그것이 우리가 찾는 생명의 길이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예수님은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생명의 길은 이러하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 늘 기도하는 삶,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적 고뇌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수난과 상처의 뒷면에서 묵묵히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것이 바로 생명의 길이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이들, 특히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우리가 가야하는 구도의 길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잃고 낙담하여 귀향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던 그들에게 그 절망 속에서도 빛을 보게 해준 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3일 후에 무덤을 찾은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좌절과 불안 속에서도 의혹과 불신이 여전히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서 걸으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에도 그랬다.

     

    그런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실망과 불신에 빠진 제자들을 사랑스럽게 질책하신다.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수많은 말씀들이 마침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의 굼뚬을 책망하시지만, 그들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풀어주심으로써 가슴 속에 하느님을 향한 열망을 다시 지펴주신다. 꽁꽁 닫혔던 제자들의 마음은 신비롭게도 열린다. 그들은 스스로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결정적인 때를 기다린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 32) 아마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바친 가장 아름다운 기도였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서 빵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은 이제 마음만이 아니라 눈까지 열린다. 당신이 잡히시어 십자가에 제헌되시기 전 예수님은 이미 당신 운명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주는 순간 자신들의 스승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떼어주시면서 한 말씀이 기억났고, 그 빵이 생명의 빵이란 사실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예수님의 당부도 떠올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만난 예수님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만나서 살 수 있는 곳에서 언제든지 만나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제자들의 눈이 열리고 이제 더 이상 부활하신 예수님은 내 밖에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체험되고 있음을 느낀 것은 성령의 역할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불안과 의혹이 아닌 확신 속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나 그들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을 선포해야할 공동의 사명감을 갖는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부활시기에 우리는 흔히 의무감이나 몸에 배어 있는 타성적 습관 때문에 신앙생활을 지속하기 쉽다. 하지만 신앙의 길은 곧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의 가치를 체험하는 기회이다. 내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것은 그저 생물학적인 생명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살아 있음을 체험할 때 진정한 가치가 생기는 법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더 연장시키거나 의미있게 마무리 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향한 우리들의 삶의 가치들을 좀 더 발견하고, 이를 신앙 안에서 계승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이 가리워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꼭 봐야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부실의 뿌리를 알기 위해서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나타나야 한다. 남의 아픔을 내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수성. 남의 기쁨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아니라, 함께 하느님 사랑 안에서 저마다 가진 은사를 발견해주고, 격려하면서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