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화도와 천주교 - 강화도령 철종의 할머니 송 마리아 순교하다

강화도령 철종의 할머니 - 송 마리아 순교하다
 
송 마리아의 묘비
묘비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신유박해가 일어나 송 마리아(은언군의 부인)와 신 마리아(은언군의 며느리)는 외국 종교를 신봉했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받았고, 그 화가 강화도에 귀양 중이 던 은언군에게까지 미쳤다.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는 왕족의 첫 순교자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의 묘소는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사라져 버렸고 터만 찾을 수 있었으며, 은언군의 묘비는 철종 2년에 사면하여 세운 것으로, 은언군과 그의 부인 송 마리아의 합장을 밝혔다. 은언군의 7대 후손인 이우용의 기증으로 1989년 9월에 진관외동의 산에서 절두산 순교성지로 안치되었다.”
 
강화도와 천주교의 인연은‘강화도령’철종(哲宗)의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0여 년 전, 그녀(송 마리아)와 며느리 신 씨는 신유박해2 사건 때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사약을 받고 순교한 것이다.
 
  • 대왕대비가 사학(邪學)에 연루된 은언군 이인의 처와 며느리를 사사하다
“〔…〕강화부에 안치한 죄인 인( )의 처 송성(宋姓) 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모두 사학(천주교)에 빠져서 외인(外人)의 흉한 무리들과 왕래하여 서로 만났으며, 나라에서 법으로 엄하게 금하는 일도 감히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하게 자신의 집안 에 숨겨 주었으니, 그가 저지른 죄를 논하면 하루도 천지 사이에 용납할 수가 없다. 이에 아울러 사사한다.”
<순조실록>(1801. 3. 16.)
 
 
1 순교(殉敎)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죽음을 당하는 일.
순교는 엄격히 말해서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실제로 죽음을 당해야 하고,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하여 초래되어야 하며,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순교는 죽음에 직면하여 신앙의 의미와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행위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육신을 죽이는 자를 초월하는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다. 그러므로 순교의 목표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그 가치는 최고의 존재자를 긍정하는 일이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격을 긍정하는 것은 사랑이므로 순교는 사랑의 행위다. 이는 신앙의 조문을 증거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과의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그분을 증거하는 행위다.

순교를 높이 평가하는 그리스도교적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삶의 실재를 증거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순교를 통한 죽음이 성부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순교자의 생명을 일치시킨다는 진리때문이다. 순교자와 그리스도의 유사점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순교자는 그리스도처럼 생명을 빼앗는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성부께 봉헌한다는 확신을 지닌 채 죽음을 맞이한다. 둘째, 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실제로 참여한다. 그래서 교회는 초대교회공동체 이래 순교자를 공경하며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 속에 순교의 의미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념으로 되새긴다. 이처럼 순교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께자기를 봉헌하는 행위이며 이로써 초대교회 때부터 순교를 혈세(血洗)라 하였다.
 
2 신유박해(辛酉迫害) 1800년,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화한 정책을 써왔던 정조(正祖)가 죽었다. 뒤를 이어 11살의 어린 순조(純祖)가 왕이 되자 모든 권력을 장악한 대왕대비 정순왕후는 곧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다.그러나 박해의 진짜 이유는 정적의 숙청이었다. 그녀가 원한을 지니고 있던 정적(남인)들 중에는 천주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녀는 새 법률 오가작통법(다섯 집 중 한 집에서 천주교 신자가 적발되면 모두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전국의 천주교인을 빠짐없이 고발하게 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역적으로 다스려 뿌리째 뽑도록 하라는 엄명을 전국에 내렸다. 
 
서울을 비롯하여 경기·충청·전라도에 이르기까지 약 1년 간 계속된 이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천주교 신자가 약00명, 유배된 자는 약 400명에 달하였고, 살아남은 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산간벽지로 몸을 피하였다. 이때 순교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 최초의 세례교인 이승훈(李承薰)과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외국인(중국)신부 주문모(周文謨),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회장 강완숙(姜完淑),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종(丁若鍾), 유학자녹암권철신(權哲身)‘, 황사영백서사건’의황사영(黃嗣永)등도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나라의 원수로 단정되었고, 아울러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국가에서 행하는 합법적인 법률행위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천주교회는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 등 크고 작은 박해를 끊임없이 받으면서도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으로 그들의 신앙을 굳게 지켜나갔다.
 
 
  • 은언군·홍낙임에게 사사하다
“강화부에 천극(귀양 간 사람이 있는 집의 울타리에 가시나무를 둘러치는 일) 했던 죄인 이인과 제주목에 안치했던 죄인 홍낙임에게 사사하였다.”
<순조실록>(1801. 5. 29.)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 인( )은 정조(正祖)의 이복동생이다. 왕의 동생이었던 그는 당시의 시·벽파 간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러나 정조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오히려 유배지 강화도에서 남부러울 정도의 귀양 아닌 휴양생활을 즐기던 은언군은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1800)으로 모든 상황이 돌변하게 된다. 그의 처지는 하루아침에 허공 속에 내던져 진‘끈 떨어진 연’의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11살의 어린 순조가 왕이 되자, 모든 권력은 정조의 정치적 최대 라이벌이었던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 씨에게 돌아간다. 정조의 친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앞장 섰던 그녀는 곧 정적제거에 나서게 되고, 여기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 천주교였다. 그녀의 정적들 중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조선에 들어와 있던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자수로 인해, 은언군의 처 송 씨가 한때 주 신부를 그녀가 거처하던 궁 안으로 피신시킨 사실과 고부간이 주 신부 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사약을 받게 된다. 위의 <실록> 중에서‘외인(外人)’이라 함은 중국인 신부 주문모를 일컬음이다. 다음 타깃은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이었다. 정조가 죽은 후, 가시울타리가 쳐진 집으로 쫓겨나서, 말 그대로‘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은언군은 한양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집 주위의 가시울타리에 구멍을 뚫고 도망을 가다 체포된다. 중죄인의 교도소 탈출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조정에서 은언군에게 사약이 내려진다.
 
48년 뒤(1849), 헌종(憲宗)이 아들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 씨가 재빨리 강화도에 있던 19살 원범이를 왕으로 지명한다. 이가 곧 철종이다. 원범이 왕으로 등극하기 하루 전날, 대왕대비가 하교한다.
 
“은언군 내외의 봉작(封爵)하는 일을 해당 관청을 시켜 당일로 거행하게 하라.”
<헌종실록>(1849. 6. 8.)
 
은언군 내외, 즉 원범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역적의 신분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 따라서 역적의 후손인 원범이 왕이 될 수 없으니 당장 그들의 죄를 없애주고 관작을 부여하라는 것이다. 2년 뒤, 이번에는 중국 측에 은언군의 무죄함을 알리기위해 사신을 보낸다.

“〔…〕신(철종)의 아비(순조: 원범은 순조의 양자로 입양되어 왕이 되었다)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었는데, 영의정 심환지가 어려운 때를 당해 권력을 훔쳐 마음대로휘두르며 국가에 변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이때를 틈탈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듬해 신유년(1801)에 신의 친할아버지 은언군 인이 제일 먼저 그 칼날을 받았는데 그때 우리나라에는 불행하게도 사학(邪學)의 옥(獄)이 있게 되었습니다. 심환지의 무리들이 신의 친할아버지도 역시 천주교에 물들었다고 말하면서 감히 천만이치에 닿지 않는 이유를 대고 천만 이치에 맞지 않는 죄를 씌워 이 옥사에 몰아넣어 싸잡아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철종실록>(1851. 1. 22.)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 내외는 이제 나라 안팎으로 모두 사면·복권되었다.
 
철종의 생모 완양부대부인 염 씨의 묘와 묘 앞에 놓여 있는‘십자가’꽃병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과 그의 부인 묘는 경기도 포천에 있다. 철종의 생모 완양부대부인 용담 염 씨의 묘와 상석 사이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돌 꽃병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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